성경에서 가장 이상한 선지자
에스겔서를 펼치면 첫 장부터 정신이 없어요. 북쪽에서 폭풍이 몰려오고, 불 속에서 얼굴이 넷 달린 생물 넷이 나타나고, 그 곁에 바퀴 안에 또 바퀴가 있는데 테두리에는 눈이 가득합니다. 그다음에는 선지자가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워 있고, 머리털을 칼로 밀어 저울에 달아요. 😄 요즘 같으면 동네에 “저 사람 좀 이상하다”는 소문이 금방 났을 거예요.
그런데 이 기이한 책이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성경에서 가장 따뜻한 한 마디예요. “여호와 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48:35). 48장 전체가 이 한 문장을 향해 걸어갑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어요(1:3). 제사장은 서른 살이 되면 성전 봉사를 시작하는데(민 4:3), 에스겔이 하나님을 처음 본 해가 바로 “서른째 해”였습니다(1:1). 원래대로라면 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첫 제사를 드리고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는 바벨론 그발 강가의 포로민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성전에 가지 못한 제사장. 바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전 밖에서 나타나셨어요.
에스겔서를 여는 다섯 개의 단어
한 통의 소식이 책을 둘로 나눈다
에스겔서는 크게 세 부분이에요.
1~24장에서 에스겔은 포로민들에게 끈질기게 외칩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어요. 거짓 선지자들은 곧 돌아갈 거라고 장담했거든요. 그러다 33장 21절,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온 사람이 소식을 전합니다. “성이 함락되었다.” 그 순간부터 에스겔의 메시지가 완전히 바뀌어요. 심판을 외치던 입이 이제 회복과 소망을 노래합니다.
바퀴 달린 보좌, 하나님은 포로지에도 계셨다
1장의 환상은 성경에서 가장 묘사하기 어려운 장면이에요. 에스겔 자신도 쩔쩔맵니다. 마지막 절을 보세요.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1:28). 영광 그 자체도 아니고, 영광의 형상도 아니고, 영광의 형상의 모양. 에스겔은 계속 “같더라”, “모양이라”를 붙이며 한 겹씩 거리를 둡니다. 직접 말하기엔 너무 거룩해서요.
| 환상 속 요소 | 무엇을 말하나 |
|---|---|
| 네 생물 · 각각 얼굴이 넷 (사람, 사자, 소, 독수리) (1:10) | 사람은 지혜, 사자는 들짐승의 왕, 소는 가축의 으뜸, 독수리는 새의 왕. 온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것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에요. 10장에서 이들이 그룹, 곧 언약궤 위와 성막 휘장의 그룹임이 밝혀져요(10:20). |
| 바퀴 안의 바퀴 · 사방으로 돌이키지 않고 가며 (1:16–17) | 방향을 틀 필요 없이 어디로든 움직이는 바퀴. 하나님의 보좌는 예루살렘에 묶여 있지 않다는 뜻이에요. 바벨론까지 오실 수 있는 보좌입니다. |
| 테두리에 가득한 눈 (1:18) |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포로민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어요. |
| 보좌 위의 사람 모양 (1:26) |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계셨어요. 다니엘의 인자, 그리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미리 비추는 장면이에요. |
교회는 오래전부터 네 생물의 네 얼굴을 네 복음서에 빗대어 왔어요(사람은 마태, 사자는 마가, 소는 누가, 독수리는 요한 등으로 짝짓는 방식은 교부마다 조금씩 달라요). 그리고 이 네 생물은 요한계시록 4장 보좌 둘레에 다시 나타납니다(계 4:7).
3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주시며 먹으라 하세요. 안팎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가득 적힌 두루마리였는데, 먹어 보니 입에서 꿀같이 달았어요(2:10; 3:3). 쓴 소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달다는 거예요. 요한도 똑같이 두루마리를 먹는데, 입에는 달고 배에는 썼다고 합니다(계 10:9–10).
몸으로 쓴 설교
에스겔은 말로만 설교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그에게 몸으로 연기하는 설교를 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눈으로 보게 하신 거예요.
| 상징 행위 | 의미 |
|---|---|
| 벽돌에 예루살렘을 그리고 포위 모형을 만듦 (4:1–3) | 장난감 공성전 같은 모형으로 다가올 포위를 보여 줌 |
| 왼쪽으로 390일, 오른쪽으로 40일 누움 (4:4–6) |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의 햇수를 짊어짐. 1년 2개월이 넘는 동안 매일 옆으로 누워 있었어요 |
| 잡곡 떡을 달아 먹음 (4:9–11) | 포위된 성의 배급 식량. 하루 떡 20세겔(약 230g), 물 6분의 1힌(약 0.6리터) |
| 머리털과 수염을 칼로 밀어 셋으로 나눔 (5:1–4) | 3분의 1은 불에 태우고, 3분의 1은 칼로 치고, 3분의 1은 바람에 흩음. 성 안 백성의 운명이었어요. 그런데 옷자락에 몇 가닥을 싸 두게 하셨어요(5:3). 남은 자가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
| 밤에 짐을 싸서 벽을 뚫고 나감 (12:3–7) | 포로로 끌려갈 왕과 백성의 모습. 실제로 시드기야 왕이 밤에 성벽 틈으로 도망치다 잡혔어요(왕하 25:4) |
| 아내가 죽어도 울지 않음 (24:15–24) |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거두어 가실 때 슬퍼하지 말라. 백성이 눈의 기쁨인 성전을 잃을 때 너무 큰 충격에 울지도 못할 것을 보여 줌. 에스겔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에요 |
성전 안에 숨겨진 네 가지 가증한 것
8장에서 에스겔은 머리털 한 모숨을 잡혀 영으로 예루살렘 성전까지 끌려갑니다(8:3). 그리고 하나님은 한 단계씩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며 보여 주세요. “네가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 성전 북문의 질투의 우상 ·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 성전 입구에 서 있었어요(8:5).
- 벽에 그린 짐승 그림 앞의 장로 70명 · 담벼락 구멍을 파고 들어가 보니 온갖 곤충과 가증한 짐승 그림 앞에서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향을 피우고 있었어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면서요(8:10–12). 레위기가 부정하다고 한 그 짐승들을 섬기고 있었던 거예요.
- 담무스를 위해 우는 여인들 · 성전 북문에서 여인들이 메소포타미아의 풍요의 신 담무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어요(8:14).
- 성전을 등지고 해에게 절하는 25명 · 성전 안뜰, 성소 문과 제단 사이에서 25명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 태양에 절하고 있었어요(8:16). 하나님께 문자 그대로 등을 돌린 겁니다.
그리고 9장에서 심판이 시작돼요. 그런데 심판 전에 먼저 하나님은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명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읍 중에 돌아다니며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9:4). 이 ‘표’는 히브리어 마지막 글자 ‘타브(ת)’인데, 고대 히브리 문자에서 이 글자는 X나 + 모양이었어요. 초대 교회의 몇몇 교부들은 여기서 십자가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종들 이마에 인을 치는 장면으로 이어져요(계 7:3).
“피투성이라도 살라”
16장은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유 중 하나예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태어나자마자 들판에 버려진 여자 아기로 그리십니다. 탯줄도 자르지 않고, 물로 씻지도 않고, 소금을 문지르지도 않고, 강보로 싸지도 않은 채 버려진 아기(16:4–5). 그때 하나님이 지나가시다가 피투성이로 발버둥 치는 아기를 보시고 말씀하세요.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에스겔 16:6
“피투성이라도 살라.”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오래 사랑받아 온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그 아기를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왕비처럼 세워 주셨어요. 그런데 아기는 자라서 그 은혜를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갔습니다. 16장은 그 배신을 아프게 고발하지만, 끝에서는 다시 이렇게 말해요. “내가 너와 세운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16:60–63). 버려진 아기를 처음 살리신 은혜가, 배신한 아내를 다시 품는 은혜로 끝나요.
18장 ·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포로민들 사이에 유행하던 속담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18:2).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우리가 벌을 받는다는 체념이죠. 하나님은 이 속담을 다시는 쓰지 말라고 하세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 서 있다는 거예요(18:4, 20). 그리고 이 장은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18:32).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서 한가운데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진심이에요.
34장 · 나쁜 목자들과 한 목자
34장에서 하나님은 양을 잡아먹고 살진 것만 챙기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꾸짖으세요.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34:11, 16).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34:23).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 하시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 비유(눅 15:4–7)를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 청중은 이 에스겔 34장을 떠올렸을 거예요.
마른 뼈 골짜기에 분 바람
36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처럼 “새 언약”을 약속하세요. 그런데 에스겔은 더 구체적이에요.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에스겔 36:25–27
돌처럼 굳은 마음을 꺼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사람 속에 두시겠다는 약속. 오순절에 이루어질 바로 그 약속입니다.
그리고 37장, 에스겔서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이어져요.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가 물으세요.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의 대답이 참 정직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7:3). 사람이 보기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거예요.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덜그럭거리며 서로 맞붙고, 힘줄과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속에 숨이 없어요(37:7–8).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생기에게 대언하라 …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37:9).
그리고 37장 뒷부분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가져오라 하세요. 하나에는 “유다”, 하나에는 “요셉(에브라임)”이라고 쓰고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고요(37:16–17). 수백 년 동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던 나라가 한 왕 아래 다시 하나 된다는 약속이에요(37:22). 그리고 이 장은 레위기 26장의 약속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끝나요.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37:27).
곡과 마곡, 그리고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
38–39장 · 곡과 마곡
회복된 이스라엘을 향해 북쪽 먼 곳에서 “마곡 땅에 있는 곡”이 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싸우셔서 그들을 멸하세요. 이 장면은 특정 나라를 맞히라는 퍼즐이 아니에요.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세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끝내 지키신다는 그림이에요. 요한계시록은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마지막 전쟁을 그립니다(계 20:8).
40–48장 · 측량되는 새 성전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14년째, 포로 생활 25년째 되는 해에(40:1) 에스겔은 높은 산 위로 이끌려 가서 새 성전을 봅니다. 놋같이 빛나는 사람이 측량 장대를 들고 문 하나, 방 하나, 벽 두께까지 하나하나 재요. 😄 다시 레위기와 출애굽기의 성막 치수표가 나오는 느낌이죠. 그런데 이 치수들은 메시지예요. 무너진 성전을 보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내가 이미 다 설계해 두었다”고 보여 주시는 거예요.
영광이 돌아온 뒤 하나님은 동문을 닫으라고 하세요.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44:2). 오늘날에도 예루살렘 성전산 동쪽 성벽의 ‘황금문’은 수백 년째 돌로 막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과 연결해서 바라보는 곳이에요.
47장 · 점점 깊어지는 강
그리고 에스겔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져요.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릅니다. 안내자가 천 척을 잴 때마다 에스겔을 물로 건너게 하는데, 물이 점점 깊어져요.
| 측량 | 거리 (1척 ≈ 45cm) | 물의 깊이 |
|---|---|---|
| 첫 천 척 | 약 450m | 발목 (47:3) |
| 두 번째 천 척 | 약 900m | 무릎 (47:4) |
| 세 번째 천 척 | 약 1.35km | 허리 (47:4) |
| 네 번째 천 척 | 약 1.8km | 헤엄쳐야 건널 강 (47:5) |
보통 강은 지류가 합쳐져야 깊어지는데, 이 강은 아무것도 보태지지 않았는데 저절로 깊어져요.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갈수록 더 깊어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강이 흘러가는 곳은 사해, 소금이 너무 많아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예요. 그런데 이 물이 들어가자 바닷물이 되살아나고,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고기가 심히 많아져서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까지 어부들이 그물을 칩니다(47:8–10). 사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장면,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요.
강 좌우에는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사귀가 시들지 않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고 해요(47:12).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가 이 장면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계 22:1–2). 그리고 예수님은 초막절 마지막 날 이렇게 외치셨어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이제 성전이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에게서 그 강이 흘러나와요.
에스겔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진 실
에스겔서를 읽을 때 붙들 세 가지 질문
장로들은 담벼락 구멍 안쪽,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짐승 그림에 절했어요. 내 마음 깊은 방에는 무엇이 걸려 있나요?
사람의 눈엔 끝난 것처럼 보이는 관계, 꿈, 공동체.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야 살아날 골짜기는 어디인가요?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은 사해까지 살렸어요. 성령이 거하시는 내 삶에서 오늘 누가 살아나고 있나요?
3주 에스겔 읽기 길잡이
| 주 | 범위 | 붙들 질문 |
|---|---|---|
| 1주 | 1–3장, 8–11장, 16장, 18장 | 하나님은 왜 떠나셨고, 그럼에도 어디에 계셨나? |
| 2주 | 33–37장 | 무너진 뒤에 하나님은 어떤 말씀으로 다시 일으키시나? |
| 3주 | 40장, 43장, 47–48장 | 영광이 돌아온 곳에서는 무엇이 살아나나? |
처음 읽을 때는 이렇게 핵심 장 중심으로 읽고, 두 번째에 나머지 장(열방 심판 25–32장, 곡과 마곡 38–39장 등)을 채워 넣으면 길을 잃지 않아요.
그래서, 에스겔서는 어떤 책인가
에스겔서는 기이한 환상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떠나신 것 같은 자리에서 쓴 책입니다. 성전은 무너졌고, 백성은 포로가 되었고, 선지자는 말을 잃었어요. 그러나 바로 그 강가에 바퀴 달린 보좌가 나타났고, 마른 뼈 골짜기에 바람이 불었고, 죽음의 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었습니다.
떠나셨던 영광은 동쪽에서 돌아왔고, 마침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어요. 그리고 오늘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니 어떤 폐허 위에서도 우리는 이 이름을 부를 수 있어요.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에스겔 48:35